심리학, 철학에 관심을 가진지 6개월 정도 된것 같다. 그전엔 철학? 뭐지? 고뇌하는건가? 이정도만 생각했었었다.^^(물론 심리학과 철학은 같다고 할수 없지만 큰 관점에서 보면 거의 같지 않나 싶다) 나의 대해 생각하고 인생에 대해 생각하면서 심리학에 관한 좋은 책을을 읽어 나가며 심리학이라는 것이 인생을 사는데 도움을 넘어 필수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이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자주 만나는 철학과 후배가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 준책이다. 그 후배한테 좀 미안한 점은 책을 알려준건 좀 됐는데 이제 한달이 다 되서 읽었다. ㅎㅎ 물론 한번에 다 읽었지만, 읽고 있던 책이 좀 많아서 다 처리?하고 읽으라고 였다.
<프레임>이 뭘까? 바로 "틀"이다. 그럼 "틀"은 뭘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며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절경하는 "틀"이라는 말이다. 이 간단하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인생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바로 살아가는 방향, 생각,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
나는 마흔이 되어서도 내 자신이 이럴 줄은 몰랐다. 젊은 날의 나는 마흔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고상해질 줄 알았다. 마흔이 되기만 하면 어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저절로 인생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대해지고, 무엇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마흔을 먹고 나서도 나는 그때처럼 여전히 싱거운 농담을 즐기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무시당하면 발끈하는 옛 성품 그대로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져야 한다는 이상과 그렇지 않은 현실 속에서 내가 내린 처방은, 내 자신이 지혜로워졌다고 느끼기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지혜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지혜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책의 재미있고 낚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야구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의 시동이 기차선로 위에서 갑자기 멈춰 버렸다.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를 보며 아버지는 시동을 걸려고 황급히 자동차 키를 돌려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기차는 차를 그대로 들이받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아들은 크게 다쳐 응급실로 옮겨졌다. 수술을 하기 위해 급히 달려온 외과 의사가 차트를 보도니 "난 이 응급 환자의 수술을 할 수가 없어. 얘는 내 아들이야!"라며 절규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아버지는 아들과 사고를 당한 뒤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았던가? 혹시 의사가 친아버지고, 야구장에 같이 간 아버지는 양아버지였을까?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 의사가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읽어보라.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p.32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