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지난 난 할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요양원에 가고있다. 할아버지가 많이 안좋으시다. 연세가 꾀 되시고 몸도 많이 약해지셔서 우리 가족은 늘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사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정말 안좋으시다고. 각오를 해야했다.
어릴적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던 때, 나는 많은 시간을 할아버지와 같이 보냈 지만 지금 돌아보면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난 분명 부모님보다 할아버지에게 더 영향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이제 얼마 못사신다. 지금 할아버지는 보러 가는 나의 심정은 슬픔도 아닌 허전함도 아니 그저 담담함이랄까. 나도 알수 없는 애매한 심정이다.
부모님과 더불어 나를 가장 오랫 동안 봐온 사람 중 한 명인,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나를 가장 오래 안 사람의 부재는 나로써는 어찌해야할지.....
2010-4-25
병원에 왔다. 노인병원 옆에는 정례식장이 붙어있다.
담담했던 나의 마음은 할아버지를 보는 순간 무너졌다. 마지막으로 나와 이야기 하시던 할아버지는 없고 아무것도 못날아보는 그저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한 늙은 노인이 거칠게 숨을 쉬며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놓치 않는 다기보단 그저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할 수 조차도 없는 상태인 것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차라리 그냥 빨리 가시는 게 더 낳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마다 할아버지의 맥박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생을 마감하고 계셨다. 나는 그저 몇달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뼈 뿐인 할아버지의 손을 잡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남은게 없었다. 그렇게 하루밤을 넘기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2010-4-25
집에 도착해 왠지 지쳐버린 몸을 뉘였다. 그때, 전화 한통이 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셧다고. 그 순간 담담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답답해 졌다. 임종을 못본것이 아니라, 의식이 계셨을 때 할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 그 것이 너무 오래 돼었다.
병원으로 가는길 갑자기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는 잘 보지 않아 비가 올거란 걸 몰랐다. 장례 식장으로 가는 지금 잖이 내리는 이 비가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것 같다. 왜 꼭 이런 날 비가 오는 걸까.
나는 남들 처럼 살지 말자 하고. 늘 생각 하고 있지만 나도 늘, 사람들이 중요한 일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들을 하느라 주변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무슨 일이 있는 지 외면 하고 살았다. 그래서 아직도 이모냥 이꼴인가보다.
2010-4-28
대전에서 장예식을 바로 치뤘다. 장례식은 잘 치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했다. 죽은사람을 추모하는 자리는 없었고, 그저 남은 사람들의 사치례라고 해야 될 판이었다. 부조금봉투에 이름만 써서 내고 절도 안하고 가는 새끼들도 있었다. 도대체 왜 온건지...
장례식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문뜩 이런 생각 들었다. 우리나라 말 고 부조를 하는 사회가 또 있을까. 그리고 그 부족금을 이름과 출처까지 적어서 정부에 세세하게 기록하는 사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알던 일이었지만 새삼스레 피부로 느끼니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이 역겹다. 새상탓 하지 말아야는데 또 어쩔 수 없다.
할아버지는 가족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려워했다. 매번 할아버지 입에서는 좋은 소리는 안나왔다.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모든 일을 다 꼬아서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나 할아버지와 마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당혹스럽거나 어찌 해야 할바를 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어렸을 때 부터 할아버지와 잘 통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말하는 것은 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하는 이라는 것을 안다. 단지 방식이 좀 옛날 것이라서 요즘 사람들은 그런 화에 익숙치 않을뿐이다. 그저 좋게 좋게 생각하려는 그런생각들....
하관을 하던날, 나는 매형대신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식을 치뤘다. 원래 영정사진은 소녀사위가 들어가 한다고 한다. 근데 난 '원래' 란 말도 어 하고 매형도 좀 사정이 있고 해서 내가 들었다.
묘지로 가던 중, 하관예배를 하는 도중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하늘에서 비가왔나보다. 나대신...
요양원에 가시기 전 아직 건강하시던 지난 해 추석...
우리나라 장례가 좀 그런면이있지요, 저도 작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셧고 그기분 잘압니다. 임종 소식을 들었을때 그저 떠오르는건 아 돌아 가셧구나...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더군요 그리고 다시 읽던 책이나 읽고있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지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셧는데 말입니다. 다음날 저도 장남이라 저도 상복을 입고 절을 해야했지요. 근데 말입니다 웃긴게 상조회사 말이지요. 사람이 죽은곳에 그저 재대로 하는것없이 멍하게 있더군요, 가시는길 마지막 좋게 보내준다고 나발이고 그저 개자식들이지요 돈이나 좀 주면 일하더이다. 그리고 또 어떤 상조회사 사람은 부조금이 어쩌고 저쩌고 돈이 어쩌고저쩌고 그인간은 돈밖에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 가족들 앞에서 말입니다. 솔직히 그냥 꺼지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만 장례식에 그런 막말을 할순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음 묘지로 인양하는날 할머니의 시신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압도적인 시신의 존재감에 생각나는건 하나였습니다. 본능일 뿐인"죽고싶지 않다."였습니다. 그생각이 들면서 제자신이 역겹더군요. 가족들과 친척들은 전부 울고있엇지만 전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신은 인형같았거든요... 창백한 인형... 시신이 운구 되고 묘지까지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19년간 어머니를 대신해서 키워줬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나자신은 정말 괸찮은건가 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장례식때 슬픈가에대한 감정을 모르겠었습니다. 충격이 심했던건지 아니면 정말고 정신이 이상했던건지...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그렇고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확실한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란인간은 그 상조회사 인간이랑 다를게 뭐가있나? 라는걸요. 그때당시의 감정은 슬프다 라는 감정이 결여되어있었으니까요.
답글삭제근데 말이죠 참으로 재미있는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전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장례를 마쳤거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돌아가셧다는 점이지요. 죽도록 할아버지 욕하셧는데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시네요...할아버지께선 그저 허허허 하시면서 넘기셧구요. 오래된기억이지만 아직도 기억나요.자주 용돈 달라고 졸랏던 기억이닜네요 ㅋ
아 밑도 끝도없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했네요.
돌아가셔서 몸은 뭍힐수 밖에 없었지만 돌아가신게 아니에요 엄연히 루완다씨의 머리의 기억속에 게시잔습니까?
그렇게 견디는거지요, 그 허전함을 기억으로 대체하면서...
@Euryale - 2010/04/29 23:52
답글삭제상조회사도 그렇지만, 사실 친척들에게도 화가 좀 났습니다. 할아버지 연세가 거의 100세 다되시고 비교적 편안히 가셨다고 '호상'이라고 하였지만, 인사치례뿐인 장례식에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전 종교가 없지만, 이번 장예는 기독교 식으로 했기에 발인, 하관 예배해 주신 교회목사님이나 같이 기도해주신 다른 기독교 분들이 정말 고맙게 느껴지더군요.